Issue 87, Dec 2013
안규철
Ahn Kyu Chul
쌉싸래한 오늘, 달콤한 내일
유학시절 안규철은 누군가 한 입 베어 먹은 초콜릿을 그리고, 칸칸이 글자를 새겼다. M O R G E N.
모르겐, 독일어로 내일이라는 뜻인 낱말은 물론 작가가 붙인 것인데, 이유는 명백하다. 내일은 언제나 초콜릿처럼 달콤하니까. 그렇다면 이 달짝지근한 초콜릿 조각을 먹은 오늘은 과연 어떠한가? 지금을 사는 우리는 달콤함을 만끽하고 있나? 이 물음에 답하자니 어쩐지 자신이 없다. 그런데 가만 보니 안규철이 그린 드로잉 또한 여러 가지 명제를 함의한다. 그것엔 내일이라고 적혀진 초콜릿을 미리 떼어먹음으로써 쓰디쓴 오늘을 잊고 싶었던 자조와 연민이 있고, 자기 의지에 따라 내일은 결코 오늘과 다를 것이라는 다짐도 담겨있는 것이다. 손꼽히는 개념미술가 안규철의 20년 전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이 그림은, 얼마 전 출간된 책을 위해 다시 옮겨 그려졌다. 탄탄한 이력과 철저한 자기철학으로 젊은 예술가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그가 이 그림을 그리는 동안 얼마나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했을까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전의 작업들을 정리하고 새로운 그림들을 추가해 또 한권의 책을 펴낸 안규철, 그가 2013년 끝자락 묵직한 신작들로 개인전을 선보였다.
● 정일주 편집장 ● 사진 서지연
'모래 위에 쓰는 글' 세부이미지 2013 모래, 스테인레스 스틸 ø300×30(H)cm